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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상단의 BGM을 잠시 멈춰주시고

유튜브 음악을 재생해 주세요.

You've got mail.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시키지 못하게 된 일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시간을 지나왔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았다. 뉴스에서는 연일 뉴욕전역에 20cm가 넘는 눈이 내릴 것이라고 보도하는 소리가 12월 내내 캐럴 선율에 섞여 들려왔다.

 

예전, 이솔렛과 관계에 대한 대화를 하고, 우리의 사이를 정의하고 며칠 되지 않았을 적 생각이 부드러운 라떼 위 김처럼 부드럽게 피어올랐다. 새삼스럽게 웃음이 피어나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보리스가 휴대폰을 내려다본다. 순식간에 유행이 지나버리는 정보화시대 때문에 기기변경을 했지만, 당시 상황을 재현이라도 하는 양, 매너모드라 아무 진동도 소리도 나지 않는 폰 화면에 알림 메시지가 떴다.

 

*

 

 

유례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잠정적으로 주립병원 상근을 했었는데 그걸 변명으로 둔갑시켜, 한번 쉬니 다시 패트롤을 못하겠다고 휴직을 하려고 했다. 갑작스런 코로나 사태의 정리가 마저 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해 줄 인사가 경찰행정부에 없다고 했다. 보리스가 NYPD본사에서 소환 령이 떨어져 잠시 출장을 가게 된 날이었다. 자가 방역 범칙을 따르지 않고 노마스크로 시민들을 위협하던 노인을 제압한 일이 있었다. 어떤 경로로 바이러스의 역학 조사를 하다가 민간인 신분인 자를 체포했는지 이래저래 보고서를 내고 휘둘리다 밤에 서에서 내준 호스텔에 감금되다시피 잠을 청하는데, 여간 잠이 오지 않았다. 늘 채워져 있던 품 안이 허전이 허전해 열기가 빠져나가는 기분.

그리고 반대로 늘 품에 안겨있던 사람에게도 한 겨울 냉기가 닿았던 모양이다.

​​​​띠링♡,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저녁은? 식사 거르지 말고 커피 조금만 마셔.

잠은 꼭 침대에서 자고 밤새지 말고.

​​​​저녁. 물론 이리저리 출두하고 다니느라 먹을 시간 없었지, 문자를 받고서야 저녁 거른 것을 깨닫지만 내일 그녀의 말을 따르잔 마음으로 바로 답문을 쓰기 시작한다. 만약 이솔렛이 저 안볼 때 끼니를 거른다면 분명 기껍지 않을 테지만 몇 년 서로에게 적응하며 살아도 여전히 괜한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아 숨기는 부분쯤은 있었다. 간결하고 빠르게 써내려가는 폰트는 고지식하게도 명조체 폰트지만 보리스는 그게 가장 눈에 익었다. 누가 쓰던 거라 익었는지도.

​띠링♥,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이솔렛도 끼니 안 거르고 잘 챙기고 있어요? 커피약속은 지켰는데 내일 조식 챙겨먹을게요.   

침대 보온 꼭 켜고 양모이불 꺼내 덮고 자요. 새벽에 기온이 떨어진대요. ...   

 

까지 치다가, 아무도 안 보는 호텔 룸에 혼자 있으면서도 굳어있는 자세의 어깨에서 조금 힘을 빼 늘어뜨린다. 밤에 혼자 남겨져 더 전전긍긍하는 쪽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단 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는 당신이 없어서 잘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잘 자요, 이솔렛. 사랑해요.   

 

지금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들었을 텐데 깨우면 어떡하지?

​​띠링♡

지금 막 보온 틀었어.

 

끝없이 만약을 만들어내며 전전긍긍하던 보리스가 고민하며 예민한 터치스크린을 찍는다. 보고 있었는지 답신이 본인과는 다르게 폭풍 같은 스피드로 돌아온다. 뉴욕 홈에는 이솔렛이 부엌 싱크에 기대 김이 올라오는 홍차 머그를 쥐고 다른 손엔 폰을 보고 있다. 보리스가 휴대폰을 공중에 던졌다가 두 바퀴 돌아 떨어지는 것을 한두 번 더 튕겨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솔렛이 눈앞에 없어도 마주 대하는 것처럼 긴장한다. 마치 이런 일상의 소통과 대화조차도 기적처럼 여기던 때가 있었다.

 

난방여부 외엔 별다른 말이 쓰여 있을 리가 없는데 연인의 답문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솔렛이 얇지만 강단 있는 손가락으로 타닥타닥, 돌아오면 논카페인 커피 타 줄까 까지 쳤다가 '아, 피곤할 텐데 커피마시면 편히 못자겠지' 하는 생각에 지우고, 또 고민하다가 보리스가 보낸 메시지 다시 한 번 보고. '양모이불 같은 거 보다 네가 더 따뜻한데.' 따위를 떠올리는 본인자신에 손을 휘저어 붉어진 공기를 식힌다. 그러다 갑자기 반짝 생각이 났다.

너도 따뜻하게 자. -보고싶...

 

까지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고.. 끝까지 쓰고 전송하는데 텀을 두고 띠링♡ 답신이 왔다.

보리스는 답신 보내자마자 휴대폰을 매너모드 해지하고 벨소릴 90%까지 올려 철제 침대의 매트리스 옆 협탁에 내려놓았다. 답신 보내고 5-10분이 지나도 답장이 안 오자, 잠든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느릿느릿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일찍 잠들 확신이 없으니 멍하니 맥주나 한 캔 깔까 하다 돌려본 TV채널에선 연일 괴로운 바이러스 사태만 나오고, 익일의 일정을 들여다보려던 찰나에 문자를 열어본다. 무슨 내용을 썼을까. 살짝 풀어진 굽은 자세로 길고 마디진 그녀의 손으로 작아져선 문자치고 있을 이솔렛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보고 싶어. 사랑해.

기다린 시간에 비례해 몇 단어 안 되는 문자에 포근 따스해지는 마음도 잠시 전화라도 걸까 하는 욕심이 물씬 일어나 양자택일의 고민을 했다. 허스키한 이솔렛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분명 안 끊을 것이고, 자신이 밤새도록 붙잡고 통화할 것 같아 전화는 포기하기로 한다. 대신 음성메시지를 남기기로 한다.

 

 띠리링~ 음성메시지♥ 가 도착하였습니다.  

 매일 밤 이솔렛과 같이 잠들다보니, 허전해요. 이솔렛도 그럴 것 같아서...    

오늘밤만 참으면 내일 갈게요. 그럼, 잘 자요.사랑해요.     

 

음성 메시지를 처음 듣는 이솔렛은 첫사랑을 하는 소녀마냥 곧바로 고막부터 온몸으로 온기가 퍼져나간다. 간지러운 심장으로 듣고 메시지가 끝나자 한 번 더 다시 듣는다. 그는 언제든 가끔 이렇게 사람이 아무 말도 못 할 정도로 치고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 남들에겐 빙석처럼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구석 없는 견고한 연하면서, 해실하고 웃는 몇 안 되는 보리스의 표정이나, 이솔렛만이 볼 수 있는 이런 말들이 기꺼웠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지, 서둘러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 켜고 파일 검색, 잠깐 목록을 고르느라 고민 후 파일

첨부메일♡ 이 있습니다. 읽으시겠습니까?

누워서 듣고, 그만 자.

어차피 밤을 샐 요량으로 있다가 기대치 않게 받은 메지시의 짤막한 요구사항 하나. 연인의 말대로, 보리스는 그 멀리서 조종되듯 자연히 앉아있던 침대에 곧바로 뒤로 쓰러져 풀썩 눕고서 귀를 기울였다. 본인처럼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는 짓은 이솔렛이 허락할 범위가 아닌 것 같은데. 졸인다면 가슴 졸이는 심정으로 메시지 위에 있는 첨부메일 파일을 쿡 클릭해 열어 핸드폰에 저장부터 하고, 실행한다. mp3파일이 1,2초 후에 재생된다.

‘It's Christmas- and we walk alone- ’

 

제 목소리로 살짝 편곡해 자장가처럼 느릿한 곡조로 약간 더 부드럽게 부르는 노래가 은은하게 귓가를 파고든다. 천천히 눈을 감고 심취해 듣다 마지막 후렴구를 같이 외어 불러본다. 목소리가 섞이자 빈 공간에 그녀가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허공에 손을 뻗어 손끝을 살살 휘저어본다. 곡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반복재생 설정을 하려는데 그 십분 쯤 후에 띠링♡, 한 번 더 착신 음과 음성 메시지.

 

"자는 걸 깨운 게 아니라면 좋겠는데 좋은 꿈 꿔. 내일 봐."

​​​​한 십초쯤 정적이라 끝났나? 싶을 때, 조그맣게 들리는 '쪽' 소리.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부터 팔 전체와 어깨를 넘어 목 위까지 한꺼번에 화끈거리고 저릿한 열기에 감전된다. 보리스가 얼음처럼 꼼짝없이 몸이 묶여버려 가만히 있자, 호스텔의 무브센서가 알아서 탁 불을 꺼버린다. 그것을 보리스는 마치 이솔렛이 ‘자, 어서.’ 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얌전히 무선이어폰을 꽂고 다시 연인의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땐, 칠흑 같은 밤이 지나고 빛이 훤했다.

 

.

.

.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귀국수속터널 앞까지 나와 기다리는 이솔렛을 마주한 보리스는 싱긋 웃었다. 분명 부대끼는 게 싫을 텐데 마중 나온 인파에 밀리면서도 첫줄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이솔렛을 바로 발견하고 서둘러 캐리어를 직 가볍게 끌고 가서 와락 한 팔로 안는다. 눈을 크게 뜨면서도 가만히 안겨주는 이솔렛이 못 견디도록 좋아서 보는 눈들도 무시하고 몇 초 지그시 끌어안고 나서야 풀어준다. 수줍게나마 금칠된 미소를 짓는 연인이 눈앞에 있다. 아, 이제야 집에 돌아왔구나.

 

"외로웠어?"

 

무감해 보이는 이솔렛이 보리스만 알아볼 수 있는 옆은 미소로 웃으며 보리스의 뺨을 문질문질 해 주려다 제 손 끝이 추위로 약간 하얗게 질린 걸 내려다본다. 그걸 보리스가 호호 불어서 따뜻하게 만들곤 제 뺨에 다시 대서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그리곤 머리위에 손을 착, 얹어 쓰다듬는다.

 

기쁨에 또 반응이 재깍 안 나온 보리스가 손등위에 손가락 엮어 잡으려 하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눈 약간 찌푸리더니 너푼하게 열려있는 코트의 단추를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잠가준다. 전부 보리스에게 알게 모르게 옮아버린 다정함이라곤 하지만 이솔렛은 하루가 다르게 수줍은 달걀껍질을 깨고 나와 상냥해지는 보리스에게 날마다 반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얘긴 늘 방어막도 없으면서 저를 어려워하는 연하에겐 해주지 않았다. 자신이 능숙해지더라도 그는 늘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

"날도 추운데 왜 이렇게 가벼운 차림이에요.."

 

운전하고 오긴 했겠지만 이솔렛은 흰 스웨터에 겨울에 없어져버릴 것처럼 새하얀 돕바 하나 입고 왔다. 부러 약간 굳은 얼굴 해 보이는 보리스가 살짝 코트 잡어 당겨 제대로 옷매무새를 정돈해준다. 할 만큼 해라 하고 놔두는지 오갈 데 없이 들고 있는 이솔렛의 손을 눈에 담고, 잡아끌어 약간 따뜻해 진 제 손바닥 사이에 가둬 비비자 조금씩 온기가 전달된다. 그러다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제 입가까지 가져다 대서 후 따뜻한 입김을 불고 문지르고를 반복한다. 양손이 좀 따뜻해지자 한 손은 주머니에 넣게 하고 남은 손은 손가락들을 엮어 살살 흔들며 빙긋 웃는 얼굴에 찬 입김이 부서지는 영하에도 싸한 추위를 몰랐다.

 

기온이 떨어지긴 했지만 고향에 비하면 뉴욕은 한겨울에도 두어 겹으로 견딜 만 하다. 눈밭에서 뒹굴며 자란 전사라 추위를 친숙하게 받아들여서인지도 몰랐지만, 몸이 어는 것도 행동이 둔해지는 것 외에 신경 쓸 것이 아니고 한달음 내달리면 잊히지 않으랴. 이솔렛에게 그런 저를 인간처럼 보듬는 어린 연인은 그저 귀엽고 선물 같았다.

 

"언제부터 와 있었어요, 배고프죠? 뭔가 따뜻해질 만한 걸 사서 돌아가요."

 

다 감기지도 않는 큰 손으로 먼저 잡아주고, 감싸주고, 녹여주던 손은 놓는 법을 모르는 양 꼭 잡고 있었다. 미지근한 입김을 호호 불며 작은 코트주머니에 넣는다. 자연스레 손이 말아졌다. 연인의 손을 잡는데, 따듯한 미소가 넘어왔다.

 

"보리스?"

 

당황한 빛이 어리는 눈망울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맑아졌다.

잠시 언 볼이 풀리면서 얼굴을 가로질러 내리는 물기를 반대편을 보고 슥 훔쳤다. 눈이 따갑다. 괜히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이솔렛이 데이트 중에 언급한 것처럼 본인은 맏이고 보리스는 막내라 이런 티가 나는 줄도 모른다.

 

"밤에 또 형 생각났구나."

"괜찮아요."

 

흐릿하게 흰 하늘을 고개 치켜들고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내려다보는 청회색의 눈가가 붉은 기운을 감추지 못해서, 같이 슬퍼지려는 분위기여서, 이솔렛이 대신 웃었다.

 

"예프넨, 만나러 갈까?"

"나중에요. 외롭지 않아요."

 

깍지 낀 손가락들을 올려 입 맞추고, 주머니에 넣어진 손을 빼지 않고 몸 뒤로 돌아서 날개아래 작은 새 같은 이솔렛을 끌어안고 앞으로 걸어갔다. 자꾸만 흘끗거리는 앞에선 여려지는 것 같다.

 

..곧 첫눈이 내릴 것만 같은 냄새가 났다.

 

​​

-타박. 타박. 사박.

 

“어...?”

 

콧잔등에 무게 없이 내려앉아 온도를 미미하게 사그라뜨리는 눈송이에 이솔렛이 손을 올리고 하늘을 바라본다. 육안으로 두세 송이 떨어지나 싶더니 서서히 흰 눈발이 온 하늘을 메우며 춤을 추듯 호를 그린다. 깃털보다는 너무 작고 결정이나 눈꽃보다는 조금 큰 알갱이들이 머리위로 내려앉아 쌓여간다. 손바닥에 떨어져 녹는 눈송이들을 온 몸에 휘감으며, 한 바퀴 돌고 두어 걸음 멀어진 이솔렛 곁으로 따라붙는 보리스가 티 없이 하얀 웃음을 뗬다.

 

“와-”

 

작게 내짓는 탄성에, 볼에 닿은 눈처럼 녹은 눈웃음을 짓고 조금 앞질러 걷는 이솔렛 뒤를 따라가 목도리로 폭- 목과 얼굴을 감싼다. 어린아이마냥 가슴 설레어하는 연인을 위해 보조를 맞춰 걸으면서,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눈 쌓인 나뭇가지를 눈치 채지 못하도록 위로 들어올리고, 걷는 방향 앞의 눈 속에서 돌을 차 치워낸다. 어느덧 집 앞에 가까워지면 아쉬워하는 낌새와 막 출장에서 돌아온 저를 푹 쉬게 해주어야 한단 생각에 고민하는 듯하다.

 

“아무리 피곤해도.”

“?”

 

아파트 현관 도어락을 찍어 열고, 캐리어를 밀어두고선 주머니에서 끈 달린 벙어리장갑을 꺼내 이솔렛의 손에 끼워 넣는다.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둔 콘셉트답게 희고 붉은 털실로 촘촘히 뜬 장갑이라 눈 만지고 놀아도 손이 얼지 않을게다. 마저 가죽장갑을 꼭 죄어 끼곤 이솔렛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끈다.

 

“첫 눈은 같이 맞고 싶어요.”

 

후훗 웃는 이솔렛의 웃음소리가 눈밭 위에 부서진다. 어쩌나 하다가도 올해 새로 받아 꼭 맞는 장갑과 목도리, 그리고 언제 나가놀았는지 기억도 희미한 둘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뛰놀고 뒹구는 것만이 즐거웠다. 아파트 마당은 밭 하나 키울 만큼 충분히 넓었고, 긴 가로수길이 나 있어 차도와도 나름 거리가 있어 둘이서 올해 첫 눈 위로 마음껏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다. 소복소복 밟으며 뽀드득- 보득- 하는 소리가 눈이라면 이골이 난 둘에게도 새롭게 들린다. 가만히 서서 팔짱끼고 어린애처럼 눈을 구경하는 이솔렛에게도, 보리스에게도 신선할 정도로, 함박눈이 펑펑 복스럽게 끝없이 내렸다.

 

‘내일 교통순경들 고생 좀 하겠는데.’

“이-솔렛-”

 

잠시 딴 생각에 잠겨있으면 어김없이 보리스가 시선을 끌어온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손 흔들며 뭐라고 부르는 연인에게 다가가려니 움찔, 다급하게 손을 들며 오지 말란다. 손으로 밑을 가리켜 눈을 내려다보니, 막 밟고 가려고 했던 땅 위로 보리스의 발자국들이 겹쳐져 찍혀 있다. 하트모양으로 걸어 저기까지 간 것 같았다. 조금 떨어져서 자세히 보니 4,5m 직경의 하트 안에 낱말을 적은 것 같아, 저보다 큰 발자국이 쓴 글씨를 읽는다.

 

- I'm home -

 

귀여운 문구에 소소하게 솟아나는 열기와 뭉클함에 이솔렛이 그대로 하트길을 따라 달려가 보리스를 꼭 껴안았다. 정말이지 함께 하면 할수록 면역이 되기는커녕 점점 더 사랑스러워지기만 한다니까. 말로 고맙다 하지 않아도 전해지도록. 포근한 온기 속에 가만히 파묻혀 있던 보리스가 붉어진 귓가로 푸르르 두 팔로 밀어 벗어나더니 정전기 이는 긴 머리를 정돈하는 것을 바라본다.

-폭.

 

“.......”

 

눈감고 여기저기 눈 묻은 곳을 살펴 털어내던 보리스에게 작은 눈뭉치가 던져서 톡 깨진다. 익. 고개 들어 던진 사람을 살짝 흘겨보면 보리스가 꾹꾹 눈뭉치를 만들며 틈을 노린다. 무언의 선전포고에 이솔렛이 두 손으로 보리스가 만든 눈뭉치를 여러 개 집어서 양손으로 휙휙 던졌다. 피하려면 우스운 공격이지만 보리스는 열성적으로 눈덩이들을 맞았다. 거리를 벌리고, 좁히고 하면서 결국 제가 만든 눈덩이를 도로 다 받는 즐거움이 흐린 하늘 아래서 상쾌했다.

짐짓 위협적으로 눈덩이를 집어 들고 세게 던지려는 보리스의 헛손짓에 눈을 꾹 감고 뒤돌아서는 이솔렛을 살짝 끌어안고 밀어 부드럽게 넘어뜨린다. 뛰어 놀던 마당이 전부 새하얗고 폭신하게 쌓여 희고 넓은 침대처럼 두 사람의 모양으로 파묻혀 들어간다.

 

“끝에 봐드렸으니 내가 이긴 거예요?”

“내가 다 맞췄는걸. 지금 너 눈사람 같아.”

“그러는 이솔렛이 하얀 옷 입고 온통 파묻혀서 더 얼음요정 같아요.”

“.......”

 

연상의 그녀가 대답하기 곤란하게 이런 유의 문답으로 끝이 나면 보리스는 언제든 시선을 내리거나 딴 짓을 하며 피한다. 지금은 눈밭위에서 앞으로 굽어보는 사람의 웃음을 피할 수 없는 구도다. 팔다리를 흔들흔들하다 눈을 푹 부채꼴로 치우자 나비모양이 만들어졌다. 뭘 하나 지켜보던 이솔렛이 누운 등 옆으로 뻗어 그려진 날개에 피식 웃었다.

 

눈의 생크림 케이크를 파 만든 눈 천사 위에. 보리스는 양 무릎으로 서서 이솔렛에게 눈을 맞추고 두 팔 사이에 머리를 가둔다. 동그랗게 뜨는 연홍빛 눈동자로 제 인영과 그 위를 덮는 백발의 눈이 여백을 메우고 있었다. 차분하게 흩날리다 꽃잎처럼 이솔렛의 뺨에 닿는 눈을, 녹기 전에 입을 가져다 댄다. 자홍빛으로 물드는 볼우물을 눈을 감고, 조금이나마 눈전투의 온기가 남아 더운 보리스가 뺨을 마주 대 녹인다.

 

“그만 들어가야겠어요. 몸이 얼기 전에.”

 

말은 더 이어지지 못하고 목을 둘러 껴안은 팔에 안겨 끊긴다. 허리에 힘을 빼고 눈 천사가 가까워진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눈웃음 짓는 앳된 애교 살과 금빛 속눈썹에 맺힌 눈송이, 그 안에 지닌 동공의 의미까지 읽을 수 있는 거리. 곧 보리스가 순백한 눈 냄새에서 유독 진하게 가슴 저리는 연인의 체향에 쉽게 취해갔다.

 

이로 물어 가죽장갑을 빼낸 맨 손이 미미한 체온의 턱을 감싸고, 목도리에서 드러나 찬 기운을 느낄 틈도 없이 부르튼 입술에 열띤 키스가 닿았다. 뜨거운 혀가 정해진 허락에 들어가 얽히고 갈라진 이음매를 꼭 붙여 핥아 올리는 성정에 몸이 와들 떠는 것을 눈 위에서 힘주어 안는다. 주위는 온통 새하얗고, 설탕 속에서 받는 키스처럼, 한없이 우직한 무게로 정성스러운 키스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도록. 바라보는 시선 외엔 온 세상이 지워졌다.

 

둘이 집에 들어가기까진, 첫 눈의 잔잔한 시간이 오래토록 길게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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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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